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image]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تیم ملی فوتبال ایران'''
'''정식명칭'''
[1]تیم ملی فوتبال ایران
'''FIFA 코드'''
IRN
'''협회'''
이란 축구 연맹 (FFIRI)
'''연맹'''
아시아 축구 연맹 (AFC)
'''지역연맹'''
중앙아시아 축구 연맹 (CAFA)
'''감독'''
드라간 스코치치 (Dragan Skočić)
'''주장'''
마수드 쇼자에이 (Masoud Shojaei)
'''최다출전자'''
자바드 네쿠남 (Javad Nekounam) 151경기
'''최다득점자'''
알리 다에이 (Ali Daei) 109골
'''홈 구장'''
아자디 스타디움 (Azadi Stadium, 78,116석)
'''첫 국제경기 출전'''
VS 아프가니스탄 (0:0 무), 아프가니스탄 카불 (1941년 8월 25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19:0 승), 이란 타브리즈 (2000년 11월 24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터키 (1:6 패), 터키 이스탄불 (1950년 5월 28일)
VS 대한민국 (0:5 패), 일본 도쿄 (1958년 5월 28일)
'''별칭'''
팀 멜리 (페르시아어: تیم ملی, Team Melli)[2]
'''월드컵'''
출전 5회 (1978, 1998, 2006, 2014, 2018)
'''아시안컵'''
출전 14회, 우승 3회 (1968, 1972, 1976)
'''올림픽'''
출전 3회 (1964, 1972, 1976)
'''라이벌'''
이라크
'''유니폼 컬러'''
'''홈'''
'''어웨이'''
'''상의'''

'''20'''



'''18'''


'''하의'''
'''20'''

'''18'''

'''양말'''


1. 개요
2. 역사
3. 역대 감독
4. 역대 전적
5. 연령별 대표팀
6. 주요 선수
6.1. 현역 선수
6.2. 은퇴한 선수
6.3. 둘러보기


1. 개요


이란축구 국가대표팀.
오랫동안 "서아시아의 맹주"로써 군림해 온 팀으로[3],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더불어 AFC 최고의 '''전통강호'''라고 부를 수 있는 팀이다.
팀 컬러부터 아리아 인종인 탓에 아시아보단 '''유럽'''에 가까우며 평균 신장은 주변 중동국가들을 훨씬 능가하고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동등하며 피지컬로는 거친 축구로 유명한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밀리지 않는다.
특히 1990년대2000년대 축구를 봐온 기성세대에겐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의 팀으로 기억되는 난적 오브 난적이며,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보다 이란을 더 어려운 상대로 인식한다. 요즘 세대에게는 이란이 그저 그런 아시아 상위권 팀으로나 보이겠지만, 1996년 아부다비에서의 일명 식스투 참사라 불리는 2-6으로 한국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에 완패한 사건을 기억하는 기성세대는 이란 하면 무지 이기기 어려운 팀으로 생각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도 기성세대의 기억 속 난적으로 꼽혔으나 사우디는 최근 기량 하강으로 쉬워졌다. 요즘 세대가 라이벌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을 난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다르다. 기성세대에게 충격과 공포의 난적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그리고 저 호주까지 셋이다.
특히 아시안컵 3연패에 빛나는 1960년대 후반부터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 1978년까지는 상대할 자가 없는 '''아시아 최강 팀'''이었다. 이때는 아시아에 주어진 월드컵 티켓이 한장 뿐이어서 동아시아, 서아시아 구분없이 아시아 전 국가가 들러붙어 생존게임을 벌여 단 한팀만 살아서 출전했기 때문에 월드컵 예선의 권위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 때 이란은 팔레비 왕조의 지원 하에 축구를 육성했으며 아리아 백인페르시아인들인지라 타 중동국가들과 달리 되려 유럽에 가까워 피지컬도 좋았다. 이란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거의 비등한 정도이니 말 다 한 셈이다.
1968년부터 1976년까지 아시안컵 3연패하고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본선진출까지 성공한 이때의 이란 축구의 위상은 조별리그로 치러진 1,2회 대회 이후 아시안컵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고, 동아시아와 서아시아가 분리된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회에서야 겨우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한 한국이 비빌수 있는게 아니었다.
일본사우디 아라비아1980년대~1990년대부터야 두각을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그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라크가 아시아의 강호로 인정받았지만 이스라엘AFC에서 추방되었고, 이라크계속 전쟁을 치르면서 축구대표팀도 몰락했다.
그러나 이란 역시 후술할 이슬람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 호메이니의 축구 경시로 인해 1980년대 들어 전력이 차차 약해졌고, 급기야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아시아 예선에서는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득실차로 밀려 아시아 최종예선에도 올라가지 못하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호메이니 사망 이후 축구 투자의 활성화와 알리 다에이를 필두로 한 스타 플레이어들의 발굴로 암흑기가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의 아시아 최강포스는 아니고 아시아 탑 레벨 수준으로의 복귀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도 가장 폭발적인 공격축구 스타일을 자랑했으나, 2000년대 후반 및 2010년대 초반부터는 대표팀 기량이 저하되면서 한국 축구 팬들에겐 극단적인 침대축구 플레이로 악명높았다. 1990년대 ~ 2000년대 초반의 이란을 생각하던 사람들은 당시의 눈이 썩어 들어가는 이란 대표팀 경기력에 의아해할 정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역시 한국에 밀려 실패하고 플레이오프에도 못 가는 굴욕을 겪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하필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만나 탈락했다. 이란이 아시아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유럽 팀에게는 한주먹거리도 안 되기 때문이다[4].
그러나 2011년 4월, 케이로스 감독 부임 이후 2012년을 기점으로 이란 축구 기량이 다시 아시아 최강급으로 살아나면서 최근엔 패패패패무(...)라는, 대한민국으로선 굴욕만 안겨주고 있는 강팀이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실력은 한국에 밀리지만 영리한 경기 운영으로 승수를 챙겨갔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실력적으로 맞불을 놓아 이기는 등 이란의 전력이 강해지고 한국이 약해지는 교차점에서 상대전적이 벌어졌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울스포츠다.
홈 유니폼은 흰색, 원정 유니폼은 붉은색으로 한국 대표팀과 유니폼이 조금 비슷하게 배치되어 있다. 홈과 어웨이만 뒤집으면 완벽히 현재 한국팀 유니폼 배열이다.
한편 이란 선수 중에는 비 페르시아계 선수가 많다. 메디 마다비키아인도인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부모가 인도에서 살다 1947년, 인도 - 파키스탄이 서로 분리되면서 파키스탄을 거쳐 이란으로 이주한 사람들인 일명 무하지룬 출신이다. 그리고 최초의 그리스도인 주장 안드릭 테이무리안아르메니아인 출신이고 전설적 에이스 호다다드 아지지우즈베크인 혈통의 튀르크계로 딱 봐도 황인처럼 생겼으며 사르다르 아즈문도 투르크멘인 출신이다. 그리고 전설의 에이스 알리 다에이는 사실 아제르바이잔계 이란인인 아제리인이다.
현재 주요 선수로는 사르다르 아즈문, 알리레자 자한바크슈, 마수드 쇼자에이, 메흐디 타레미 등이 있으며 감독은 크로아티아 출신 드라간 스코치치다.
2020년까지 아시아에서 유럽 1부리그 득점왕을 가장 많이 낸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아시아 국적으로 유럽 리그에서 득점왕을 내놓은 나라는 2020년까지 우즈베키스탄(막심 샤츠키흐가 2002~03시즌을 비롯하여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 2번 오른 것이 처음)과 이란 뿐이다. 2017~18시즌에 알리레자 자한바크슈네덜란드 에레디비시 득점왕이 되었으며 2019~20시즌 사르다르 아즈문이 유럽 리그 랭킹 7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이 되었고 같은 해에 메흐디 타레미가 유럽리그 랭킹 6위 프리메이라 리가 공동 득점왕이 되면서 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하에 같은 해, 유럽 최상위 리그급 2개에서 득점왕을 내놓은 유일한 나라이다.

2. 역사


이란 축구를 키운 장본인은 훗날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 혁명으로 쫓겨난 팔라비 2세. 당시 백색혁명이라 불린 이란의 서구화를 주도한 팔라비 2세는 축구가 곧 서구화의 주요 방편이 될 것이라고 보고 투자를 했던 것이다.
이와 별개로 팔라비 2세 본인은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해서 국가대표 선수들과 같이 공을 차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왕인지라 당연히 전형적인 충성축구였던 모양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정권을 장악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축구도 서구의 잔재로 규정하고 탄압하려 했지만,[5] 그야말로 축구에 미친 국민들이 이에 불만을 크게 터뜨리면서 '''"아니, 축구를 탄압하다니? 차라리 팔라비 왕조 시대가 더 낫다!"'''라고 여론이 악화되는 바람에 축구 탄압은 결국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어버렸다.
게다가, 호메이니 정권의 핵심인사들 중에서도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축구 탄압 계획은 그냥 백지화가 되어버렸다. 베헤슈티 등 호메이니 측근들도 축구광이었다.
심지어, 호메이니 정권의 고위층들 중에서도 축구 금지령을 시행한다고 했을 때 '''"호메이니를 총으로 쏴버릴까?"'''라고 고민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아무튼, 현재 이란의 축구계는 시간이 흘러서 호메이니가 사망하여 물러난 이후에야 국가 단위로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졌다.
그리고, 고위급 정치인들이나 재계의 인사들이 축구 산업과 관련된 강력한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정치적인 선전이나 이권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많았을 정도로 축구 탄압은 커녕, 오히려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호메이니가 집권하던 시절은 스포츠 지원에 인색했었다.
이란의 축구리그인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이란-이라크 전쟁의 여파로 1990년 전후로 잠시 주춤거린적도 있으나 아시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수준이 매우 높으며, 국민들의 축구 열기도 대단하다. 에스테그랄페르세폴리스 FC의 테헤란 더비는 FIFA에서도 주목할 정도이고, 매 경기 10만명 이상이 모여서 응원을 하는 아시아 최대의 규모의 더비다. 원래 이란 리그는 아마추어 리그고 프로축구가 없었다가 나중에 프로축구화되었다.[6]
월드컵 본선에 5회 진출[7]했다.
본선 전적은 2승 4무 9패이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로서는 북한-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서 3번째로 월드컵 본선 승리를 챙겼다. 그 승리의 대상이 된 나라는 바로 '''미국.'''[8] 적성국이라 당시 언론에서도 화제였다.
월드컵 조운이 좋지도 않았고[9] 2000년대 중반 세대교체의 실패로 크게 전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한국, 일본, 호주, 사우디가 먼저 해낸 16강 진출을 아직까지도 못 하고 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상대의 자책골에 힘입어 모로코를 1:0으로 이기며 두번째 승리를 챙겼지만 아쉽게 16강은 실패.
1994 FIFA 월드컵 미국때는 최종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에게 0-3으로 크게 졌고, 이 패배가 발목을 잡아 결국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다. 이란의 최종 성적은 2승 3패였는데 최종전 사우디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2승 2패였기 때문에 이때 마지막 경기전까지 2장의 티켓을 놓고 북한을 제외한 5개팀이 경합을 하는 형국이었다. 이 결과는 도하의 기적 참조.
1980년대까진 국제경기에서 자주 만나지 못했던 두 팀은 이때부터 악연을 이어간다.
겨우 2년 뒤, 1996년 AFC 아시안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정반대로 6-2로 발라버려서 국내 축구팬에게 잊지 못할 아픔을 주기도 했다.[10] 이란의 축구 스타인 알리 다에이, 호다다드 아지지, 카림 바게리, 라만 레자에이, 바히드 하셰미안, 메디 마다비키아, 알리 카리미, 자바드 네쿠남 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4년뒤인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8강전에서 또 만나서 이번에는 이동국의 골로 2:1로 한국이 이겼는데, 당시 이란 관중들은 6:2라는 걸개로 한국을 도발했었다.[11]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플레이오프에서 아일랜드를 만나 원정에서 2-0으로 패했고, 홈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그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그 해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월드컵 4강으로 기세등당한 한국을 승부차기에서 꺾고, 결승에서 일본을 물리쳐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때 이란의 금메달 멤버 중 한 명이 바로 '''자바드 네쿠남.'''
아시안컵에서는 한일전보다 한국-이란전을 더 높게 치는 경향이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나라는 아시안컵에서 자주 만나며 한 번씩 승리를 주고받으며 팽팽한 호각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6년 아랍에미리트 대회 이후 8강에서 승리를 주고받고 하는 소울 메이트(...)가 되었고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까지 5연속 8강에서 만나 조 2위로 올라온 팀이 조 1위로 올라온 팀을 꺾고 4강에 진출, 4강에서 필패 후 3.4위전에서 필승하며 3위를 가져가는 패턴으로 어느쪽이던 피를 본 건 마찬가지인지라 최고성적은 늘 3위였다.
이란이 아시안컵 성적은 대한민국보다 더 좋고 우승횟수도 더 많으며 아시안컵 대회가 열리기만 하면 항상 빠지지 않고 우승 후보로 거론될 자격이 있는 팀인데, 2007년과 2011년 아시안컵에서 2회 연속으로 8강에서 한국을 만나 4강도 못 가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한국보다도 더 이기고 싶어하는, 아니 지면 용서 못하는 경기가 있으니 바로 '''이라크'''다. 한일관계보다 더욱 해먹은 관계[12]인 만큼, 열기는 한일전을 아득히 넘는다.
어느 정도냐면 2015년 호주 아시안컵 당시 이라크에게 지자 매우 분개했으며, 이라크-한국 경기에서 이란 관중들이 한국을 응원했다. 사사건건 아시안컵에서 길목을 놓고 다투는 대 라이벌 관계라지만 그래도 민족의 원수가 이기는 건 더 못 보겠다는 것.
홈에서 비정상적으로 강하기로 유명하다. 이란 대표팀의 홈 구장인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 1,273m 고도에 위치해 있어서 저지대에서 살다온 원정팀들이 고산병 증세를 보이기 딱 좋아 적응에 상당히 애를 먹으며[13], 무려 10만명이나 수용하는 거대 구장인 주제에 과거 여자들은 출입이 금지되었었다.[14]
게다가 잔디상태도 최악이라서 원정팀에겐 지옥이다. 거기에 적대적인 이란 관중들은 덤이다. 여성 입장이 금지되었던 과거엔 구리구리한 시커먼 남자들뿐이라 매우 험악했고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만 해도 1998년 프랑스 월드컵 플레이오프에서 여기서 주눅들어 무재배하는 바람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런 곳이니, 당연히 홈 어드밴티지가 아주 죽여준다. 오죽하면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이나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등의 세계최강들도 여기만 오면 고전 끝에 패할 것이라고 할 정도다.
그러나 올림픽 대표는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전 이란 대 한국 전에서 이천수의 결승골을 내주어 0-1로 패해 불패신화가 깨진 바 있으며[15] 성인 대표팀은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16]에서 패한 적이 있다. 또한 2014년 기니와의 경기에서도 패하였고 2017년 이라크와의 비공개 A매치에서도 0:1로 패하였다.
아시아 정상권인 성인대표팀과 달리 청소년 대표팀은 상당히 약하다. U-17, U-20, U-23 대표팀 모두 아시아권에서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다.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는 1973년 자국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고 76년 대회까지 4회 연속 우승[17]했지만[18] 그게 마지막.
1970년대를 마지막으로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고 2000년 자국의 테헤란 대회에서 4위를 차지한게 23년만에 거둔 4강이었으며 이웃 앙숙 이라크가 이 대회 우승하여 쓴 얼굴로 봐야했다. 그리고 14년이 넘도록 4강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리고 본선에서도 2001년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 0-5로 완패하는 등 좋지 않았다.
그러나 아시아 청소년축구 예선에선 여러 차례 한국의 발목을 잡기도 하여 기성세대는 절대 청소년이라고 약체로 기억하지 않고 난적 중 하나로 꼽고 있다. 2000년 테헤란 대회만 해도 쿠웨이트가 숙적 이라크와 같은 조가 되는 것을 컴플레인한 바람에 한국이 조 편성에서 이란, 쿠웨이트를 피하고 대신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파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등 상대적 약체들로 바뀌자 환호했을 정도. 물론 이때 중국에 0-1로 일격 당하는 차이나 쇼크를 겪고 광탈했다(...). 공교롭게 한국을 격파한 중국은 아르헨티나 대회 본선에서 16강에 들었다.
그나마 AFC U-16 축구 선수권 대회은 2000년 대회에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 준우승하고 2008년 우즈베키스탄 대회에서 한국을 제치고 우승했다. 2012년 자국 대회에서 3위를 거뒀기에 여기선 좀 하는 편.
청소년 월드컵에선 FIFA U-17 월드컵에선 2009, 2013년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 2009년 대회에선 네덜란드를 이기고 16강에 올랐으나 우루과이에게 패했다. 그리고 2017년 대회 조예선에서 독일을 4-0으로 뭉개는 돌풍을 일으키며 조 1위로 16강에 올라 멕시코를 이기고 사상 첫 8강에 진출해 스페인과 겨뤄 1-3으로 졌다. FIFA U-17 월드컵이 24개국 체제로 된 뒤로 아시아 나라에서 3번째[19] 8강 진출 성적이다.
그러나, FIFA U-20 월드컵은 1977, 2001년,2017년에 본선에 올라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한번도 2라운드를 넘어서지 못했다. 특히 앞서 말한 2001년 대회에선 프랑스에 0-5로 완패하는 개망신까지 당했다.
이란 축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알리 다에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란 축구의 모든걸 손에 움켜쥐고 있었고, 이로 인해 선수단 멤버에 대해 세대 교체를 감행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은퇴하기 전에는 후배 공격수들에게 자리를 안 내줘 세대교체 실패의 원인이 되었고 은퇴하고 나선 감독이 되어 알리 카리미같은 에이스들과 불화를 일으켜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되었다.
더불어 이란축구협회에서 중요한 요직도 차지해 놓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도 알리 다에이가 직접 만든 회사의 유니폼을 쓰게 했으며 선수 선발에도 자신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선수들은 철저히 배제했고 다른 이란 축구계 인사들이 한국에도 친숙한 이란계 미국인이자 당시 이란 리그를 제패했던 페르세폴리스 감독이었던 압신 고트비를 감독으로 올리자 자신이 직접 압력을 넣어 고트비를 자르고 감독을 역임했다.
이로 인해 대표팀 성적이 급락하자 비난 여론이 폭발하면서 결국 알리 다에이가 물러나고 고트비가 복직했고, 협회와의 유연한 관계 조율로 나쁘지 않은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2010년 9월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이 때 후반 20분 부터 침대축구를 해서 축구 카툰의 칼카나마는 웹툰에서 이란의 3대 전술은 압박, 역습, '''침대'''라고 에둘러 까기도. (#보러가기)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축구 3, 4위 결정전에서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3:1로 앞선 상황 후반 접어들면서 역시나 침대축구를 시전하면서 꼴볼견이 재현되나 했으나 지동원의 연속골로 3:4 대역전패를 당했다. '''3:3 상황까지는 신나게 드러눕고 아픈 척 하다가 역전당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이란 선수들의 모습이 이 날의 백미'''. 후반 추가시간에는 골키퍼까지 한국 진영에 와서 진상짓을 하다가 선수가 바로 공을 잡고 골대 쪽으로 그냥 골을 차려는 찰나, 이라크 주심이 경기를 끝내줘서 그나마 3:5 캐관광은 면했다.
그리고 고트비가 사임했다. 사임하기 전 2014 월드컵 3차 예선에선 3승 2무로 마지막 6차전 상관없이 최종예선행을 확정지었다.
감독을 교체하고 돌입한 월드컵 최종예선에선 1차전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해 우즈벡 감독을 모가지시켰다. 하지만 2차전 안방경기에서 카타르에게 0:0으로 비기며 불안감을 주더니만 3차전 레바논 원정에서 0-1로 패해 한국과 같은 레바논 쇼크(항목 참조)를 당한다. 그리하여 4차전 한국전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2014 월드컵 예선 4차전에서 지옥의 이란 원정과 기성용 체제 이후 경기 안 풀릴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 한국팀의 부진으로 1명이 퇴장당하고 감독까지 퇴장당하는 악조건을 이겨내고 1:0으로 승리했다.
이란 안방에서 열린 5차전 예선전 우즈베키스탄 경기는 0-1로 패하면서 조 예선 3위로 추락했으나 2013년 6월 4일 카타르 원정에서 구차네자드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긴 이후 레자 구차네자드의 연속 득점포를 앞세워 레바논, 한국을 차례로 꺾으며 3연승을 질주하며 극적으로 본선에 합류했다. 특히 한국한테는 15차례의 슈팅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끈끈한 압박으로 실점을 허용하지 않은 다음 후반 15분 김영권의 클리어링 미스를 구차네자드가 놓치지 않고 연결해 조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안겼다.
이 날엔 경기가 끝난 직후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최강희 감독에게 주먹감자를 날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브라질 월드컵에선 F조에 속해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맞붙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선 해 볼만한 조편성이라 이란 내에선 16강에 대한 열망을 강하게 드러냈으나, 나이지리아전에서 무승부에 그치고 아르헨티나전에서 극단적인 텐백 전술로 90분을 버텼으나 추가시간 '''1분'''을 남기고 '''리오넬 메시'''에게 결승골을 허용해 패했다. 마지막 보스니아전까지 1-3으로 패하면서 탈락하며 한국, 일본, 호주와 함께 사이좋게 광탈했다.
2014년 9월 15일에 벌어진 인천 아시안 게임 조예선에서는 베트남에게 '''1:4'''로 지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란이 압도했음에도 슈팅이 15번 날려 그마저도 패널티골로 1골 들어간 거랑 달리 베트남은 5번 유효슈팅을 날려 들어간 탓.[20] 여기서 끝나지 않고 키르키스스탄과 2차전에서 무를 캐면서 광탈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키르기스스탄이 0-1로 베트남에게 지면서 골득실로 밀려 아시안 게임 16강조차 가지 못하고 광탈했다.
2014년 11월 18일에 한국과의 평가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이걸로 한국의 테헤란 원정 전적은 2무 4패가 되었다.
2014년 10월에 열린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태국에게 1-2, 예멘에게 0-1로 패하며 남은 개최국이자 조 1위인 미얀마전 승패와 상관없이 여기서도 광탈했다. 2012년에 열린 U-19 아랍에미리트 대회에서는 8강전에서 한국에게 1-4로 처발리긴 해도 조예선에서 일본을 2-0으로 이기며 조 1위를 차지하던 것과는 대조적.
2015년 3월 선수 차출 문제로 케이로스 감독이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아시안컵 8강 탈락 후, 노장 선수들의 은퇴와 불안한 세대교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란 축협 입장에선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현재 세금 문제로 잡아 놓고 있는 중인데 과연 어찌될지... 결국 세금에 굴복한(...) 케이로스 감독이 사퇴를 번복했다. 하지만 네쿠남의 은퇴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남았다. 다행인 점은 2차 예선 상대가 고만고만 하기에 정비하고 테스트해볼 시간은 충분하다는 점이다.
2015년, 러시아 월드컵 2차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 비기면서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무패 행진을 거두며 최종예선에 진출했고 최종예선에선 한국을 아자디에서 실력으로 가볍게 눌러버리고 1위로 순항중이다. 결국 8차전까지 6승 2무 무실점으로 조 1위로 아시아 첫 월드컵 본선을 확정지었다. 더불어 2014년에 이어 처음으로 2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게다가 2016년 10월 11일 홈경기인 예선전에서 또 한국을 1-0으로 이기면서 13승 7무 9패로 한국전 우위를 갱신했다. 더불어 테헤란 원정 2무 5패에 2000년대 들어 6승 4무 4패.
2010년대 들어서 케이로스 체제에서 5승 1무 1패로 한국을 압도하고 있었다. 2011년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에게 0-1로 진 뒤로 4승 1무로 한국전 무패를 기록하며 한국 킬러가 되어버렸다.
최종예선을 마친 뒤에는 10월,11월 평가전 상대로 토고,러시아,파나마,베네수엘라를 낙점하였고 각각 2:0 승리 1:1 무승부 2:1 승리 1:0 승리라는 성적을 거두어 무패행진을 이어나갔다.
스웨덴 출신의 귀화선수 사만 고도스는 토고전서 이란 대표로써 A매치 데뷔전을 가졌고 11월 파나마전서 A매치 데뷔골을 집어넣어 이란 내에서 화제가 되었고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포함되는 호재를 누렸다.
1,2월에는 별다른 전지훈련은 갖지 않았고 3월에는 본선 상대 모로코를 대비하여 시에라리온,튀니지,알제리아프리카 3연전을 계획, 홈에서 시에라리온을 4:0으로 대파하였으나 3월 튀니지 원정서 불운의 자책골로 0:1로 패하면서 무패행진이 깨졌다. 이후 알제리를 상대로 2:1 승리를 챙기며 2승 1패를 기록.
5월 출정식 겸 우즈베키스탄과 평가전을 치렀고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1:0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이란은 터키 원정에 나설 24인 명단을 확정했다. 눈에 띄는 점은 벨기에 리그 29경기 12골로 뛰어난 활약을 펼친 공격수 카베흐 레자에이의 탈락과 베테랑 수비수로써 A매치 116경기를 치렀고 최종예선서 맹활약한 잘랄 호세이니가 탈락하였다.
터키전 이후에는 벨기에 리그로 이적한 알리 골리자데흐를 탈락시키면서 23인 명단을 확정했다. 다행히 부상으로 신음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주전 선수들이 별 이상 없이 모두 승선하여 최정예 멤버로 러시아행인 점은 이란으로써는 행운.
이후 이란은 이스탄불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과 평가전을 가졌다.
실험을 거듭하던 이전 경기와는 다르게 케이로스 감독은 아즈문,타레미,자한바흐슈,쇼자에이,하지사피 등 주축 선수들을 모두 내세우며 베스트 일레븐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란은 공수 양면에서 약점을 드러내며 1:2로 패했다. 전반 6분만에 터키의 토순에게 실점하며 수비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공격진의 핵심 아즈문과 자한바흐슈가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교체되었다. 후반전 토순에게 추가 실점을 당하며 0:2로 끌려갔고 추가시간 터키 수비진의 실책으로 얻어낸 패널티킥을 아슈칸 데자가가 마무리하면서 간신히 영패를 면했다.
이 날 이란의 경기력은 매우 나빴고 월드컵을 앞두고 많은 우려를 낳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리스와의 경기가 터키와 단교사태로 취소되면서 테스트 기회마저 날리게 되었다.
결국 이란은 터키에서 짐을 싸고 가장 먼저 러시아에 입성하였고 모스크바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이후 러시아 현지에서 리투아니아와 최종평가전을 치르렀는데 전력노출을 꺼린 이란의 요청으로 경기 1시간전 비공개 경기로 전환하였다. 결과는 1:0 승리. 두 수 아래나 다름없던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다득점에 실패했다. 후반 43분 아즈문의 극적골로 승리를 챙겼다.
이렇게 해서 월드컵 직전의 이란의 평가전 성적은 6승 1무 2패. 수치상으로 보면 부족함이 없으나 상대가 우즈베키스탄[21],베네수엘라, 토고 ,시에라리온 등 약체였으며 월드컵 진출국과의 경기는 단 두번, 그마저도 최약체로 꼽히는 파나마와 개최국이나 영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러시아와 경기를 치렀다. 월드컵 본선에서 만날 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에 비하면 한참 부족한 상대들이며 터키 원정서는 어이없는 이유로 귀중한 A매치 기회를 날렸다.
이란의 축구팬들과 감독 케이로스는 이러한 사정에 대해 이란 축구협회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급기야 협회의 태도에 불만을 갖고 있었던 케이로스는 재계약을 거부하고 월드컵 직후 사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월드컵을 앞두고 좋지 않은 경기력과 뒤숭숭한 분위기로 이란의 월드컵 전망은 밝지 않았다.
그러나 모로코 전에서 이란은 영혼의 늪축구를 구사하면서 모로코의 맹공을 모두 막아내면서 모로코를 늪에 빠트렸고 위협적인 역습도 자주 보여주면서 브라질 월드컵 당시보다도 진보된 늪축구를 구사했다. 결국 케이로스 감독의 전술에 휘말린 모로코는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고도 종료 직전 자책골로 자멸했으며 이란은 아시아팀으로써 첫 승을 따내면서 이란의 수비축구가 세계 레벨에도 통한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계최강 스페인, 2016 유로 우승국 포르투갈을 상대로 비록 1무 1패를 거두어 탈락했으나 역시나 이란의 특유의 늪축구와 날카로운 역습에 2실점 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두 팀을 크게 고전시켰다. 다만 기대를 모았던 공격진의 사르다르 아즈문알리레자 자한바크슈가 부진하여 이번 월드컵서 필드골이 없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 출신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부임 이후 해외 거주 이란인 교포 선수들이 자주 대표팀에 들어오고 있다.
레자 구차네자드, 아슈칸 데자가, 다니엘 다바리, 스티븐 베이타슈르, 사만 고도스가 대표적인 이란인 해외교포다.
하지만 구차네자드, 데자가를 빼고는 뚜렷한 활약을 펼치는 선수는 없고, 일부 교포 출신들은 어렸을때부터 해외에서 살거나 아예 그쪽에서 태어난 경우가 많아 문화적 차이[22], 종교적 차이[23]에 심할 경우는 아예 모국어인 페르시아어도 모르는경우가 있어서 기존 이란 출신 선수들과 갈등도 있는 편이다.
고도스는 스웨덴 이민자 출신이자 본래 스웨덴 A매치 대표 데뷔전까지 치른 선수였으나 2015년 이후 선발되지 않았고 결국 감독과 마찰을 빚어 이란 국적을 선택하여 당당히 러시아 월드컵에 참가하였다.
그리고 테이무리안 같이 아르메니아 내진 오세티아 혈통의 경우 기독교인으로 이슬람 신자들도 아니라 이질성이 꽤 크다. 같은 무슬림이라도 튀르크계 투르크멘이나 노가이 타타르 출신들은 시아파가 아닌 알레비파나 수니파이기도 하고 소수 종파인 아바디파를 믿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베테랑 마수드 쇼자에이에산 하지사피가 난데없이 축구협회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스 클럽 파니오니오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두 선수는 지난 2017년 8월 4일 새벽 4시(한국시각) 2017-2018 UEFA 유로파리그 3차 예선 2라운드에서 이스라엘 클럽 마카비 텔아비브를 상대로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0-1로 졌고 이스라엘 원정에서도 0-1로 진 팀은 탈락했는데 적성 국가 팀이랑 경기를 했다는 이유로 국대 선수에서 영구 퇴출 징계를 받았다.
그런데 두 선수는 지난 7월 28일 텔아비브 네타냐 위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유로파 리그 3차 예선 1라운드 때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이란 국적 선수라 이스라엘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렇기에 일단은 국적 문제로 이스라엘도 이랬기에 피파에서도 이란만 닥달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자 발급 거부랑 다르게 정치적으로 국대 선수 징계는 상황이 다르기에 이란 축구는 계속 이러다간 출전금지 조치를 당한 쿠웨이트처럼 될 가능성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란 여론은 격분하고 있고 케이로스 감독도 이 처분을 무르지 않으면 국대 감독에서 사임하겠다고 강력히 반발 중이다.
게다가 쇼자에이는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된 직후 이란 선수단의 일원으로 대통령궁을 방문해 최고 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를 만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쇼자에이는 종교적 율법 문제로 여성들의 스포츠 경기장 방문을 불허하고 있는 문제를 거론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이 조치를 해제해 달라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정치적 보복을 당한 거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두 선수들은 문제 없이 이란의 월드컵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도 쇼자에이는 주장까지 맡았다. 사실상 징계는 무효화된 셈이다.
이란 축구계는 의외로 개혁파 지지 비율이 높음에도 모하메드레자 다바르자니 체육부 장관은 이 징계를 옹호하고 있다. 정작 이란 축구협회는 이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피파에 가서 서문을 내며 부정하고 있는 거랑 대조적이다. 계속 이러다간 정말로 이란은 피파로부터 '''월드컵 본선 진출권 박탈'''이라는 사상 초유 징계가 나올 수 있다!!!
그럼 어부지리로 한국이 본선에 올라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판국. 물론 이란 축구협회에서 부정하며 막고자 안간힘을 쓰긴 하지만 정치계가 저러고 있으니 이러다간 진짜 징계먹어 본선진출 무효화가 이루어질 지 모른단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로 이란 정부가 나서지 않는지 징계가 내려지지 않으며 이리하여 이란의 진출권은 유지되어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나가게 되었다.
사실, 앞서 서술한대로 이란에서의 축구 인기를 생각하면 저렇게 굴다가 실력으로 이뤄낸 월드컵 진출이 박탈된다면 1979년 이슬람 혁명 급으로 사람들이 분노하여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많았다..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호메이니가 축구를 싫어하였지만 측근들조차 축구를 금지하려던 그에게 그러다가 민중들이 혁명 일으켜 우리를 내쫓고 팔레비 왕을 다시 받아 들일걸요? 라는 말을 하여 호메이니가 포기할 정도였다.
사실 호메이니가 늘그막에 남긴 저서만 봐도 측근들도 축구를 좋아하여 축구건 농구건 야구건 스포츠에 대하여 부정적이던 호메이니가 다른 건 몰라도 축구 금지하라고 할 때 측근들 눈빛부터가 이뭐병 눈빛이 되었다고 회고할 지경이었다.
월드컵 종료 후 케이로스 감독은 본인의 SNS를 통해 사임 의사를 밝히며 한국, 콜롬비아, 멕시코 등을 찔러 보다가 또다시 유임하면서 일명 언론플레이를 시전했다. 계약은 2019년 아시안컵까지이다.
한편 이란은 월드컵 직후 평가전 상대를 찾는데 애를 먹고 있다.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가 취소되고 현재까지 마땅한 스파링 상대를 찾지 못해 브라질 월드컵 종료 당시처럼 9~11월 A매치 기간을 공백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다.
9월 11일 이란은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원정 평가전을 확정했으며 3일에도 매치 데이가 잡혀있지만 결국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해 공백이 되었다.
우려와는 다르게 어떻게든 A매치 상대들을 찾아냈다. 홈에서 10월에는 한국을 물 먹였던 볼리비아, 11월에는 트리니다드 토바고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을 치르는 것으로 확정된다.
선수명단은 월드컵 멤버를 주축으로 탈락했던 선수들도 몇몇 포함되었다. 눈여겨 볼 점은 은퇴를 선언했던 사르다르 아즈문이 발탁되었다는 것인데 본인이 은퇴를 번복한 것인지 아니면 행정상의 오류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향후 명단에서 아즈문의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보아 행정오류로 보인다.
이란은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서 자국리그의 신성인 토라비의 골로 1:0으로 승리했다. 1군이 아니였음에도 우즈벡을 거의 갖고 놀았다. 이날 경기엔 쇼자에이,데자가와 같은 노장들과 골리자데,토라비와 같은 영건들도 함께 출전해 세대교체가 준비중임을 알 수 있었다.
아시안컵을 끝으로 케이로스 감독이 물러나면서 이란은 새 감독을 물색하고 있으나 마땅한 후보군은 없는 상태이다.
이란은 감독, 예산 문제로 어수선한 가운데 3월 A매치 기간에도 마땅한 상대를 찾지 못해 아시아팀과의 경기로 땜방하거나 아예 공백으로 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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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은 아시아에서 마지막으로 아시아치타가 남아있는 나라로, 이란의 축구대표팀은 보호 캠페인에 동참하자는 취지에서 그들의 유니폼에 아시아치타를 그려넣었다.
여자 축구대표팀도 있는데, 히잡을 쓰고 하의를 7부 바지로 입는 등, 노출을 최대한 막는 차림 을 하고서 경기에 나서지만, '''11명 선발 중에 4명이 남성으로 발각 났다.(...)'''# 저 중에 10번 선수가 유달리 체격이 좋고 인상이 늠름해서(...) 네티즌들이 양심도 없다고 비난을 했는데, 10번은 여자가 맞다고.(...)
한국과의 전적은 13승 9무 9패로 우세.
여담으로, 이란도 대한민국처럼 징병제 국가인데, 스포츠 선수는 아시안 게임 금메달, 올림픽 메달과 세계 대회 결승 진출자에게 병역이 면제된다. 축구도 이러는데[24]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을 마지막으로 금메달이 없기에 병역 면제가 없다.
이러다 보니 2018년 7월에 이란 체육부는 사르다르 아즈문을 비롯한 유망주 7명에 대한 특별 병역 면제를 이란 국방부에 요청했다.
2018년 11월 정치계의 이란 축구 협회 개입 때문에 뜻하지 않은 징계 철퇴를 맞게 되었다.# 자칫하면 아시안컵 뿐만 아니라 카타르 월드컵 출전까지 날아갈 판이다. 여기에 종교적인 이유로 문신한 선수는 국가대표팀에서 퇴출시킬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2019년 6월 11일, 한국에서 벌인 친선전에서 한국이 무려 8년 5개월만에 이란전에 골을 기록했으나, 김영권자책골로 겨우 5분 뒤에 동점골을 허용, 1:1로 경기를 끝내면서 2011년 이후로 이란전 2무 4패 무승을 그대로 이어나갔다.
그러나 케이로스가 나간 이후 이란은 과거 아시아 최강 복귀 포스가 사라졌고 다시금 그저 그런 팀(...)으로 전락하는 중이다.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이 자국 월드컵을 앞두고 2019 아시안컵에서 우승컵을 차지함으로서 다크호스로 급 부상 중인것과 대조되며 이러다가 진짜로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쿠웨이트 축구 국가대표팀 등의 몰락 수순을 밟을지도 모른다.
마르크 빌모츠 감독이 사임한 후인 2020년 2월 7일, 이란 페르시안 걸프 프로 리그에서도 감독을 했었던 드라간 스코치치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 홍콩을 2-0, 캄보디아를 14-0으로 잡으며 무난하게 조 선두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였으나, 바레인과 이라크에게 연달아 충격패를 당했다. 이 때문에 자력 1위 가능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2020년 상반기 경기를 전승하지 않으면 본선 진출은 커녕 2차 예선에서 탈락하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

3. 역대 감독




4. 역대 전적



4.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48위'''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
불참
1938 프랑스 월드컵
불참
1950 브라질 월드컵
불참
1954 스위스 월드컵
불참
1958 스웨덴 월드컵
불참
1962 칠레 월드컵
불참
1966 잉글랜드 월드컵
불참
1970 멕시코 월드컵
불참
1974 서독 월드컵
예선 탈락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조별리그
14위
1
3
0
1
2
2
8
1982 스페인 월드컵
기권
1986 멕시코 월드컵
실격[25]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탈락
1998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26]
20위
3
3
1
0
2
2
4
2002 한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06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26위
1
3
0
1
2
2
6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28위
1
3
0
1
2
1
4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18위
4
3
1
1
1
2
2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
합계
본선진출 5회
5/20[27]
10
15
2
4
9
9
24
월드컵 진출 횟수 다섯 번, 최고성적 조별리그(2018년 1승 1무 1패), 총성적 '''2승 4무 9패, 9득점 24실점'''으로 월드컵 랭킹 '''48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8년 대회에서 승점 3점을 쌓으면서 순위가 무려 여섯 계단이 상승했으며, 세네갈,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많은 순위가 오른 세 팀 중 하나다.
코트디부아르,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그리고 같은 아시아의 호주와 승점이 같다. 평균 점수[28]에서 코트디부아르 · 남아공 1.11(승점 10점 / 9경기), 튀니지 · 이란 0.67(승점 10점 / 15경기), 호주 0.63(승점 10점 / 16경기)를 기록하여 코트디부아르, 남아공에 밀리지만 호주에 앞서고, 평균 점수가 같은 튀니지와는 골득실에서 튀니지 -12점, 이란 -15점으로 앞서서 승점이 같은 다섯 나라 중 네 번째 순위이다.
아프리카의 튀니지와는 2018 러시아 대회를 통해 성적이 완전히 똑같아졌다. 두 나라 모두 2승 4무 9패에 진출 횟수도 각각 5회로 동일하고,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점, 두 대회에서 1승씩 얻고 나머지 세 번을 1무 2패를 기록했다는 것까지 같다! 이는 스코틀랜드카메룬과의 관계와 같으며, 두 나라간의 차이는 오직 골득실이 전부다.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가장 실력이 뛰어난 쌍두마차 역할을 해온 나라로서, 탄탄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힘이 있고 역동적인 축구를 구사'''했던''' 나라였으나 2000년대 중후반 슬럼프를 겪은 이후로는 줄곧 수비와 늪축구에 의존하고 있다. 월드컵 랭킹이 높진 않은데 진출 횟수에 비해서도 낮은 편이다. 아시아에서의 위상과는 달리 한국과 북한, 일본, 호주, 사우디아라비아도 해본 조별리그 통과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라인데, 조별리그가 최고성적인 나라들 중에서는 스코틀랜드 , 코트디부아르,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다음으로 순위가 높다. 15경기에서 승리를 겨우 두 번 했는데, 그들의 숙적 미국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것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상대방의 자책골로 1:0 승리를 거둔 것이 그들의 승리 기록의 전부이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으며, 굵게 표시된 국가는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들이다.
'''독일''' 1패(1998)
'''아르헨티나''' 1패(2014)
'''스페인''' 1패(2018)
네덜란드 1패(1978)
세르비아 1패(1998)
멕시코 1패(2006)
포르투갈 1무 1패(2006, 2018)
미국 1승(1998)
나이지리아 1무(2014)
스코틀랜드 1무(1978)
페루 1패(1978)
모로코 1승 (201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패(2014)
앙골라 1무(2006)
대륙별 상대전적은 아래와 같다.
'''유럽 2무 7패'''
'''남미 2패'''
'''북중미 1승 1패'''
'''아프리카 1승 2무'''
이란이 월드컵 전적에서 앞서는 나라는 '''미국, 모로코''' 두 팀이고, 호각세인 나라는 '''나이지리아, 스코틀랜드, 앙골라''' 3개국이며, '''독일, 아르헨티나, 스페인, 세르비아, 네덜란드, 멕시코, 포르투갈, 페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란에 패배를 안긴 국가는 '''독일(1패), 아르헨티나(1패), 스페인(1패), 네덜란드(1패), 세르비아(1패), 멕시코(1패), 포르투갈(1패), 페루(1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패)'''로 총 9개국이다. 전부 1패씩만 당했고, 아직까지 2패를 기록한 국가는 나오지 않았으며, 이 중 '''포르투갈'''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을 상대로 전패를 기록중이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98년 조별리그 미국전 2:1 승리로 두 골을 넣었다. 하지만 이 경기 외에 한경기에서 두 골 이상 넣어본 적이 없다. 최다실점 기록은 1978년 조별리그 페루전 1:4 패배다.
처음으로 월드컵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으로, 최전성기였던 네덜란드 조에 쿠비야스가 버티던 남미의 강호 페루, 전 대회에서 1승 2무를 하고도 조 3위로 미끄러진 스코틀랜드와 묶여 험난한 신고식을 치뤘다. 똑같이 탈락한 스코틀랜드전만 무재배로 선방했을 뿐 나머지 두 팀에게 3점차로 패하면서, 아시안컵 3연속 우승의 아시아 챔피언으로서의 자존심은 와르르 무너지고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그 뒤로 호메이니 혁명, 이란-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1980년대에는 두 대회 연속 참가를 하지 못했고, 12년만에 복귀한 1990년 대회 예선에서는 중국에 밀려 최종예선 진출조차 실패하였다. 다음 대회에선 최종예선에 오르기는 했지만 2승 3패, 최종 5위의 성적으로 승점 자판기 북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과의 경쟁에 모두 밀려 광탈했다.
1998년 대회에선 20여년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사우디에 밀려 조 2위로 최종예선을 마감해, 일본과의 플레이오프에 패하면서 오세아니아와의 플레이오프로 떨어져 전망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떨어지나 싶었는데 호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홈 1:1, 원정 2:2로 무를 캐면서 원정 다득점 원칙에 따라 간신히 본선에 올랐다. 특히 호주 원정에서 0:2로 밀리다가 후반 막바지 두 골을 몰아넣은 것은 정말로 극적이었다.
20년만의 본선 무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독일, 유고슬라비아의 2강 체제가 너무 뚜렷해 사실상 16강을 넘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정치적, 문화적으로 적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2:1로 승리하면서 당 대회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하게 1승을 챙겨가며 본전 이상의 성과는 거두었다. 특히 미국을 이겼기 때문에 조별리그 광탈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2002년 예선에서는 아랍연맹과의 대립 + 중국을 진출시키기 위한 FIFA의 고의적인 편애로 인해 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최종예선에서 미국 못지않게 감정이 험악한 라이벌 사우디와 같은 조가 된 것이다. 전 대회 본선에 진출했음에도 톱시드는 중국이 가져가고, 옆조는 월드컵 본선 경험이 전무한 팀들끼리 모인 꿀조 중의 꿀조가 되면서 이란은 사우디와 피튀기는 경쟁을 해야했다. 사우디와의 전적에서 1승 1무로 앞섰지만 약체 바레인에게 1무 1패로 발목이 잡히면서 사우디와 승점 1점차로 조 2위로 마감, 유럽의 아일랜드와 플레이오프를 벌였지만 홈 1:0, 원정 0:2로 골득실에 밀려 진출에 실패했다. 이 무렵 이란의 전력은 최고조에 올랐고 괌을 20:0으로 이기는 등의 대활약을 하던 시기였기에, FIFA와 AFC의 동반 농간의 희생자로 안타깝게 월드컵을 TV로 지켜봐야 했다.
다음 대회인 2006년부터는 전망이 밝아졌다. 한국과 일본의 활약으로 아시아 쿼터가 4.5장으로 확대되어 조 2위까지는 본선직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번에도 일본에 밀려 3회 연속 조 2위로 최종예선을 마쳤지만 본선 직행에 성공, 8년만에 본선무대를 밟았다. 조편성도 매우 좋았다. 톱시드 중 가장 약한 멕시코, 1966년 이후 40년간 부진해왔던 포르투갈,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에 오른 앙골라와 한 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르투갈과 멕시코의 벽을 넘지 못하고 1무 2패 조 최하위로 떨어졌다. 멕시코전의 경우 8년전 한국이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에 똑같은 스코어로 졌고, 승리가 유력해 보였던 최약체 앙골라를 상대로도 경기 내용에서 밀리며 무승부로 끝내 이란 내에서의 비난 여론이 거셌다.
이 이후로 국대의 주축 선수들이 노쇠화로 대거 은퇴하면서 사상 최악의 침체기를 맞았다. 2010년에는 한국, 사우디, 북한, 아랍에미리트라는 최악의 조에 속하는 바람에 2승 5무 1패 조 4위로 탈락했다. 테헤란 홈경기에서 숙적 사우디에 패하는 굴욕까지 얻었고, 결국 이란은 팀컬러를 대대적으로 바꾸기에 이른다.
화끈한 공격축구를 버리고 극단적인 수비전략으로 선회, 침대축구까지 곁들이며 어중간한 약팀보다 한국과 같은 강호들을 잘 잡아내며 2014년 본선에 다시 올랐다. 레바논, 우즈벡에 패하고 카타르와 비기는 부진함으로 막판까지 탈락이 유력했지만 마지막 3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사상 최초로 최종예선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마지막 한국전에서 비기기만 해도 조 3위로 미끄러져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는데, 원정 경기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상대로 약점을 붙들고 늘어지며 김영권의 실책을 틈타 결승골을 뽑아내 1:0으로 승리하며 극적인 역전을 일구어냈다.
냉정히 보면 현재 아시아 팀에서 그나마 피지컬 & 기술적으로 유럽에 비벼볼 수 있는 선수단과 전술을 보유한 팀이다. 그러나 본선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한 첫 경기에서 지루한 경기를 펼치며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그래도 메시가 활약하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후반 막판까지 0:0으로 선방하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이면서 마지막 보스니아만 잘 상대한다면 1승 2무로 사상 첫 16강 진출이 유력한 듯 했으나 막판 메시에게 극적인 결승골을 헌납한 끝에 결국 1무 2패 조 4위로 또 다시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심지어 16강 진출을 위해 다득점이 필요했던 마지막 경기에서도 자신들이 평가전에서 4승 1무로 앞서있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된 보스니아에게 1:3으로 패하기까지 하면서 극단적인 수비전략으로만은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해야만 했다.
이후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서는 마지막 시리아전에서 2골을 먹히기 전까지 무실점 가도를 달리는 완벽한 모습을 보이면서 2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예선에서의 호성적을 바탕으로 피파랭킹도 아시아 최상위로, 조추첨에서 3번 포트에 속하는 받는 행운까지 얻었지만, 하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한 곳에 있는 B조에 편성되면서 사상 첫 2라운드 진출이 또 불투명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1차전 모로코와의 경기에서는 극악의 늪 축구로 버티다가 경기 막판에 터진 상대의 자책골로 1 : 0 개뽀록승을 거두고, 2차전 스페인을 상대로는 침대축구를 하다 디에고 코스타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으며 0 : 1로 패해 16강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그리고 3차전 포르투갈과 1 : 1로 비기면서 1승 1무 1패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긴 했으나 1승 2무를 기록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려 이번에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4.2. 올림픽


  • 1976년 대회 8강
  •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U-23 대회로 변경.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 탈락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예선 탈락
2000 시드니 올림픽
예선 탈락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 탈락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 탈락
2012 런던 올림픽
예선 탈락
2016 리우 올림픽
예선 탈락
2020 도쿄 올림픽
예선 탈락

4.3. AFC 아시안컵


'''AFC 아시안컵 대회 순위 : 1위'''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승점
홍콩 1956
기권
대한민국 1960
예선 탈락
이스라엘 1964
기권
이란 1968
'''우승'''
'''1위'''
'''4'''
'''4'''
'''0'''
'''0'''
'''11'''
'''2'''
'''12'''
태국 1972
'''우승'''
'''1위'''
'''5'''
'''5'''
'''0'''
'''0'''
'''12'''
'''4'''
'''15'''
이란 1976
'''우승'''
'''1위'''
'''4'''
'''4'''
'''0'''
'''0'''
'''13'''
'''0'''
'''12'''
쿠웨이트 1980
4강
3위
6
3
2
1
16
6
'''11'''
싱가포르 1984
4강
4위
6
2
4
0
8
3
'''10'''
카타르 1988
4강
3위
6
2
2
2
3
4
'''8'''
일본 1992
조별리그
5위
3
1
1
1
2
1
'''4'''
아랍에미리트 1996
4강
3위
6
3
2
1
14
6
'''11'''
레바논 2000
8강
5위
4
2
1
1
7
3
'''7'''
중국 2004
4강
3위
6
3
3
0
14
8
'''12'''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2007
8강
5위
4
2
2
0
6
3
'''8'''
카타르 2011
8강
5위
4
3
0
1
6
2
'''9'''
호주 2015
8강
6위
4
3
1
0
7
3
'''10'''
아랍에미리트 2019
4강
3위[29]
6
4
1
1
12
3
'''13'''
합계
우승(3회)
14/17
68
41
19
8
131
48
'''142'''
아시안컵에서 유일한 3연속 우승, 14회 연속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란은 역대 아시안컵 전적 '''1위'''의 경지에 올라와 있다. 총 네번을 우승한 일본에게 우승컵 횟수는 밀리지만 온전히 획득 승점으로만 순위를 판단하는 아시안컵에서는 출전 횟수가 한국과 함께 공동 1위이기에 승점에서 따라올 만한 나라가 한국 외에는 없다.[30]
그러나 이란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반의 3연속 우승 이후로는 계속 부진하고 있다. 1979년 이후 10년간 혁명과 전쟁 등의 사회혼란을 겪으면서 아시안컵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고, 1990년대부터는 한국과 5연속 8강에서 만나는 징크스가 생겨 여기서 발목이 잡혀 잘해야 4강에 그쳤다. 특히 최근 세 대회에서 모두 8강에 주저앉으면서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국가명
전적
대회연도
대한민국
3승 1무 3패
1972, 1988, 1996, 2000, 2004, 2007, 2011
일본
2무 2패
1988, 1992, 2004, 2019
중국
3승 4무
1976, 1980, 1984, 1988, 2004, 2007, 2019
사우디아라비아
1승 2무 1패
1984, 1988, 1996(2번)
쿠웨이트
1승 2무 1패
1976, 1980, 1984, 1996
이라크
4승 2무 1패
1972, 1976, 1996, 2000, 2011, 2015, 2019
아랍에미리트
4승 1무
1984, 1988, 1992, 2011, 2015
우즈베키스탄
1승
2007
카타르
2승
1988, 2015
이스라엘
1승
1968
시리아
1무
1980
바레인
2승
2004, 2015
태국
3승 1무
1972, 1996, 2000, 2004
북한
4승
1980(2번), 1992, 2011
오만
1승 1무
2004, 2019
인도
1무
1984
미얀마
1승
1968
말레이시아
1승
2007
대만
1승
1968
캄보디아
2승
1972(2번)
싱가포르
1무
1984
홍콩
1승
1968
레바논
1승
2000
베트남
1승
2019
남예멘
1승
1976
예멘
1승
2019
방글라데시
1승
1980
지역별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지역
전적
동아시아
12승 7무 5패
서아시아[31]
19승 9무 3패
중앙아시아
1승
동남아시아
8승 2무
남아시아
1승 1무
이란에게 패배를 안긴 국가는 '''대한민국(3패), 일본(2패), 사우디아라비아(1패), 쿠웨이트(1패), 이라크(1패)'''로 총 5팀이다. '''대한민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모두 1번씩만 패배했고 전패를 기록하고 있는 상대는 없다. 그리고 이 5개 팀들 중에 '''대한민국'''이 최다 패배를 안겼으며, 유일하게 '''일본'''을 상대로만 상대 전적에서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란이 승리를 기록한 나라들은 '''이라크(4승), 아랍에미리트(4승), 북한(4승), 대한민국(3승), 중국(3승), 태국(3승), 카타르(2승), 바레인(2승), 캄보디아(2승), 사우디아라비아(1승), 쿠웨이트(1승), 우즈베키스탄(1승), 이스라엘(1승), 오만(1승), 미얀마(1승), 말레이시아(1승), 대만(1승), 홍콩(1승), 레바논(1승), 베트남(1승), 남예멘(1승), 예멘(1승), 방글라데시(1승)'''까지 총 23팀이다.
이란이 아시안컵에서 상대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 단 하나 뿐이며 호각세를 이루는 나라들은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시리아, 인도, 싱가포르'''까지 총 6팀이다. 나머지를 상대로는 전부 상대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북한, 카타르, 바레인,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이스라엘, 미얀마,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 레바논, 베트남, 남예멘, 예멘, 방글라데시'''까지 총 15팀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란이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상대는 이라크로 7경기에서 총 14점을 획득했다. 그 뒤를 이어 아랍에미리트에 5경기에서 13점을 획득했고 중국을 상대로 7경기에서 13점을 뽑아내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했다.

4.3.1. 아시안컵 징크스


  • 이란을 탈락시킨 팀은 다음 라운드에서 떨어진다.
- 2000년부터 이란을 토너먼트에서 탈락시킨 팀은 모두 다음 라운드에서 짐을 쌌다. 2000년 한국이 8강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이동국의 골든골로 이란을 2 : 1로 제압하고 4강에 진출했으나 4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1 : 2로 패배해 탈락한 것이 그 시초였다. 그리고 그 이후 2004년 중국이 준결승전에서 이란을 잡는 이변을 보였으나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졌고, 2007년, 2011년 모두 8강전에서 한국에게 잡혔으나 한국 역시 준결승전에서 각각 이라크와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짐을 쌌다. 2015년에는 이라크가 8강전에서 이란을 승부차기로 이겼지만 바로 한국과의 4강전에서 0대2 패배. 2019년에는 일본이 4강전에서 이란을 3대0으로 이겼지만 결승전에서 카타르에게 1대3으로 참패를 당했다. 이란 잡고 안 떨어지려면 결승전에서 만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 1976년 우승 이후 단 1번도 결승전에 진출한 적이 없다.
- 이란은 자국에서 열렸던 1976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후로 2019년까지 43년 동안 단 1번도 결승전에 오른 적이 없다. 대한민국 역시 반세기가 넘도록 아시안컵 우승을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결승전엔 4차례 오른 적이 있는데 이란은 1976년 대회 이후로는 단 1번도 결승전에 오르지 못했고 3위가 최고 성적이다.

4.4. 아시안 게임


이후부터 U-23 대회로 변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다음으로 아시안 게임 통산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아시안 게임 2번째 우승 기록을 함께 갖고 있다.

5. 연령별 대표팀


흔히 성인대표에 비해 연령별(청소년) 대표팀은 약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정확히는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요즘 세대의 오해에 가깝다.
하지만 연령 제한이 있는 대회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올림픽 축구(U-23)에는 아시아 예선을 단 한번도 통과를 못해서 딱히 오해라고 보기도 힘들다. U-20 월드컵이나 U-17 월드컵도 한국, 일본처럼 거의 매번 아시아 예선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고, 본선에 못 나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시안 게임(U-23)도 최근에는 별 볼일 없다.
FIFA U-20 월드컵은 1977년, 2001년,2017년에 본선에 올라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한번도 2라운드를 넘어서지 못했는데 이 때문에 약체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2001년 아르헨티나 U-20 대회에서는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5-0으로 크게 지기도 했었고 이후에는 아예 본선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가 2017년 한국 대회에서 오랜만에 나와 그나마 광탈했기에 더 약체 이미지가 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시아 청소년 축구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함께 어느 세대이든 늘 상위권을 형성해오고 있어서 약체는 절대 아니다. 최근들어 세대 교체가 주춤해 부진한 건데 요즘 세대가 잘 모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시아 청소년 축구에서 늘 이란을 만나 고전하던 1990년대, 2000년대 축구를 봐 오던 기성세대는 절대 이란이 청소년 축구 약체라는 것에 동의 안 한다.
FIFA U-17 월드컵에선 2009, 2013년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7년 대회 조예선에서 독일을 4-0으로 뭉개는 돌풍을 일으키며 사상 첫 8강에 진출했다. FIFA U-17 월드컵이 24개국 체제로 된 뒤로 아시아 나라에서 3번째[32] 8강 진출 성적이자 2017년 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나라들이 모두 16강에서 멈췄던 걸 봐도 2017년 한 해 열린 두 청소년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고성적이다. 이들이 3년뒤에 FIFA U-20 월드컵에서도 잘 할지 관심사.
그러기에 이란 청소년 대표팀이 꼭 약하다고 보긴 어렵다. 중간에 이란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을 겪는 바람에 축구 유망주 양성이 흐지부지되고, 유소년 축구 시스템까지 무너져 버려 세대교체가 부진하면서 1990년대 출생 세대들이 부진한 탓에 청소년 대표가 약체화되었을 뿐이고, 이제는 어느 정도 축구 인프라가 복구된 뒤인 2000년대 태생들이 청소년팀에 합류하면서 옛 전력을 회복 중이다.
한국팬들에게 이란 청대가 약체 이미지인 이유는 성인대표팀과 달리 U-20 레벨이서나 U-23 레벨에서나 상대 전적에서 여유있게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그러할 가능성이 크다[33]. 특히 토너먼트에서 맞붙었을때는 한국이 대부분 이긴 편임으로 더욱 그런면도 있을 듯.
U-23 대표팀이 출전하는 걸로 변경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기록만 보면, 올림픽 축구에서 단 한번도 본선에 올라간 적이 없다.
아시안게임의 경우, U-23이 출전하는 걸로 변경된 2002년 이후 기록을 보면, 2002년 금메달, 2006년 동메달, 2010년 4강, 2014년 조별 리그 탈락(23위), 2018년 16강전 탈락(14위)를 기록하고 있다.

6. 주요 선수


현재가 국가대표 축구팀의 최 전성기임을 반증하듯 서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많은 유럽파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다. 특히 이란 자국 리그의 형편이 그렇게 좋지 못하기 때문에 실력이 좋은 선수들이 대거 유럽으로 나가고 있으며, 이 중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유럽 5대리그에 입성하거나 그 밑 단계 중상위권 리그에서 리그 수위권 선수로 잘 나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격진은 역대급으로 풍족하며 사르다르 아즈문은 러시아 리그 득점왕을, 메흐디 타레미가 리그 득점 공동 1위를 2019-20 시즌에 달성했었고, 2017-18 시즌에는 알리레자 자한바크슈가 네덜란드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EPL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6.1. 현역 선수




6.2. 은퇴한 선수



6.3. 둘러보기




[1] 페르시아어[2] 국가대표팀(the National Team)이란 뜻의 페르시아어이다. 정식명칭인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이란 축구'가 빠진 약칭. 단순히 국가대표팀이라 칭하면 축구 대표팀을 뜻할 만큼 이란에선 높은 위상을 갖고있다. 태극전사(Taegeuk Warriors)처럼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별칭이다.[3] 정작 소속 지역연맹은 중앙아시아 연맹이다. 반대로 중앙아시아 연맹으론 유일한 월드컵(특히 성인 국대) 출전국이라 볼 수 있다.[4] 이는 비단 이란만 이런 게 아니라 이상하게도 중동팀들은 강호든 약체는 유럽과 맞붙었다 하면 패하는 일이 잦다.[5] 아프가니스탄탈레반들은 축구도 가차 없이 탄압해 축구장을 공개처형장으로 활용했다.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도 이때 사실상 와해 수준으로 무너졌다. 나름 남아시아 강호였던 아프간 축구는 이제는 탈레반 통치 후유증으로 아시아 최약체가 되었다.[6] 이 때문에 1990년대만 해도 이란의 유명 축구스타 대부분은 유럽에서 뛰었다. 알리 다에이는 헤르타 베를린에서 오래 뛰었고 우즈베크인 출신 호다다드 아지지도 독일 리그에서 뛰었으며 카림 바게리, 알리 카리미, 야즈다니 등 나중에 나온 선수들도 마찬가지다.[7]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 1998년 프랑스 대회, 2006년 독일 대회, 2014년 브라질 대회, 2018년 러시아 대회 본선 진출. 2002년 한일 대회에서는 아일랜드, 2010년 남아공 대회에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밀려 본선진출 실패.[8]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2:1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날 이란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9] 1978년에는 강호 네덜란드와 쿠비야스가 있던 전성기의 페루, 1998년에는 독일과 유고슬라비아, 2006년에는 포르투갈과 멕시코, 2014년에는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가 같은 조였다.[10] 다에이 4골, 아지지 1골, 바게리 1골. 참고로 바게리는 이 날의 골이 국가대표 첫 골이었다.[11] 당시 이란 기자들도 경기 전에 이걸 이야기하며 한국 기자들을 약올리다가 한국에게 0-5로 지던 건 잊었다고 반격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 기자들은 대체 언제적 일이오? 라고 질문하여 1958년 대회라는 말을 듣고 피식거리며 거의 50년 전 이야기라고 어이없어했다.[12] 메소포타미아페르시아 문명의 대립에서부터 시작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적대관계다.[13] 이게 어느 정도냐면 우리나라로 치면 지리산 노고단에서 경기를 치르는 격이다. 노고단은 급행등반 시 숨이 차고 어지러우며 귀가 멍멍한 고산병 초기 증세가 나타난다.[14] 호메이니 집권 이후 무려 38년이나 여성 관중의 입장이 금지되었다. 호메이니 사망 이후 허용을 놓고 자주 갑론을박이 벌어졌었다. 1990년대 개혁파인 하타미 대통령 시절에는 잠시 허용되기도 했었다. 1998년 월드컵 최종예선 때 여성들의 축구장 출입이 허용됐었는데, 그때 서방언론에서 이란이 개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레발을 많이 쳤다. 이례적으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축구 아시아 지역 예선 한국전과 2006년 독일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일본전에는 피부를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여성 원정 응원단의 입장이 일시적으로 허용되기도 했었다. 대신 이란 여자축구 경기에는 남자들이 출입금지된다. 축구장에 여자 관중을 허용하지 않던 최후의 나라 이란도 2019년 사하르 호다야리의 분신자살 사건으로 FIFA의 엄중경고를 먹고(월드컵 출전을 영구박탈하겠다고 했었다. 에스테그랄 테헤란 FC문서 참조) 10월부터 쿼터제로 나마 여성의 입장을 허용하고 말았다.#[15] 이 승리도 무려 40여 년 만에 거둔 것이며, 한국 A대표팀는 아직까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있다.[16] 2009년 3월28일. 이 때도 한국은 테헤란 원정에선 무승부이었다.[17] 이 중 3회는 공동우승이긴 했다.[18] 12회 우승의 한국, 6회 우승의 이스라엘에 이어 3번째로 우승횟수가 많다.[19] 한국이 2009년,일본이 2011년 8강에 진출한 적 있다.[20] 알리 다에이의 전횡도 있지만, 이란의 유소년 축구 인재는 현재 시원찮은 상황이다. 이게 국대에도 영향을 미쳐서 케이로스 감독이 직접 유럽을 돌아다니며 이란계 선수를 찾아 귀화시키기도 했다.[21] 이때의 우즈베키스탄은 AFC 챔피언쉽서 우승을 차지한 멤버가 주축이였으며 성인대표 선수는 단 한명만 출장하였다.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이 기적을 쓴 그 대회이다.[22] 이란의 교육과는 영 다른 교육을 받다보니 차이가 크다. 그리고 일부 선수 중에는 과거 팔라비 왕조 시절 중산층 이상 계층들이 이슬람 혁명 때문에 해외로 대거 망명한 사람들의 2세인지라..[23] 이란이라고 해서 무조건 전부 무슬림은 아니다. 일부 선수중에는 오세티아나 아르메니아 혈통으로 가톨릭, 정교회 신자도 있다. 참고로 현 대표팀 주장인 안드라니크 테이무리안은 이란 국가대표 역사상 최초로 비 이슬람(테이무리안은 아르메니아 정교)출신 최초로 주장에 오른 케이스다.[24] 월드컵은 3위권 진출하면 면제다.[25]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인해 홈경기를 제3국에서 치르기로 권유받았지만 이를 거부함으로서 실격당했다.[26] 지역예선에서 조2위를 차지하고 2위 플레이오프에서 일본에 패, 호주와의 대륙 플레이오프에서 원정 다득점에 앞서 진출. 조예선에서 원수 미국을 잡으며 이란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한 승리를 가져감.[27]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28] 승점/경기횟수를 나눈 점수[29] 이번 대회부터 3-4위전이 폐지되었다. 따라서 사실상 공동 3위[30] 특히 이란은 3번의 우승을 기록한동안 단한번의 무승부도 없이 전승을 했고. 14번 출전하는 동안 단 8번의 패배만 겪었기에 승점관리면에서도 완벽하다.[31] 이스라엘 포함[32] 한국이 2009년,일본이 2011년 8강에 진출했다.[33] 2020년 4월 기준 1990년대 이후 U-23 레벨에서는 6승 1무 2패, U-20 레벨에서는 5승 0무 0패로 각각 한국이 압도적으로 앞선다.